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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금강산의 모습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의 철조망을 현대의 금강산 관광 개발로 인해 녹여 절단한지 6년여가 흐른 지금, 처음 유람선을 이용한 금강산 관광에서 비무장지대를 통과하는 육로 관광으로 발전하여 관광 상품도 당일, 1박2일, 2박3일등 다양화 되었다. 12월12일 말로만 들어왔던 금강산을 직접 관광하기로 하고 토요일 오후 좀 일찍 출발하였다. 약6시간 여 만에 도착한 곳은 고성군 간성을 지난 모 해수욕장, 민박집이 밀집된 지역이었다. 전방지역이어서 그런지 해변으로 나가는 경계지역은 철조망으로 가로막아 통행이 제한 되어있었고 어둠과 적막함은 밀려오는 파도와 함께 교묘하게 조화가 되어 이름 없는 해수욕장을 쓸쓸히 지키고 있었다. 아침 6시 간단하게 라면으로 식사를 하고 금강산콘도에서 여행권을 교부받아 셔틀버스를 이용 통일전망대로 이동했다. 약300여명이 7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북한 땅으로 출발한 시간은 8시40분, 국군의 선도차량의 안내에 따라 남방한계선을 넘어 인민군이 근무하는 북방한계선까지 가는 시간은 불과 몇, 이제부터는 인민군 선도차량이 관광차를 안내했다.

 북한 땅의 첫 화면은 금강산 1만2천봉 중에 하나인 나즈막한 돌산과 그 산을 휘감아 한껏 멋진 자태를 뽐내는 맑디맑은 호수가 정겹게 자리 잡고 있었다. 차창가의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수분이 흘렀을까? 화면에서만 보아왔던 인민군과 첫 대면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차량검색 시간이 그것이다. 크지 않은 키, 윤기가 없는 얼굴색, 매서운 눈초리, 전형적인 인민군 모습이다. 창밖을 보니 인민군 막사가 보이고 연병장에는 제식 훈련하는 인민군들이 무리를 지어 왔다갔다한다. 생각과는 다르게 제식훈련이 너무 형편없어 보였다. 흡사 신병교육대의 세련되지 않은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차량검색을 마치고 금강산으로 가는 전용도로를 따라 천천히 출발한다. 차창밖에 펼쳐지는 북한의 모습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정말 상상 밖이었다.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우리나라 60년대의 전형적인 농촌모습 바로 그 모습이었다. 기와집이기는 하나 수리가 전혀 안된 지붕과 연료를 나무로 사용하여 집집마다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농촌의 한가로움 모습보다는 쓸쓸함과 적막함을 느끼게 했다. 부락과 부락을 잇는 도로로 북한 주민들이 자전거와 도보로 바삐 돌아다닌다. 무슨 일을 하고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먼 거리를 걸어서 다니는 모습 역시, 우리나라 60년대 모습이요, 언덕을 오를 때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가는 모습은 연민의 정까지 느끼게 한다. 전혀 자가용은 찾아볼 수 없고 간간히 트럭에 많은 사람을 태우고 이동하는 모습만 보일뿐이다. 주변의 산은 나무하나 없는 황량함 그 자체였다.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는 특성 때문에 나무가 남아날리 없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큰 마대자루에 나무를 구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 이런 이유의 답을 말해준다.

 이런 저런 낳 설은 모습들을 보며 버스는 쉬지 않고 북측 출입국 사무소가 있는 장전항으로 속력을 내어 달려갔다. 북측 출입국 공안요원들의 모습, 인민군과는 조금 다른 제복을 입고 신속하게 관광증에 도장을 찍어준다. 입국심사를 무사히 마치고 본격적인 금강산 산행이 시작한 시간은 9시40분이 넘은 시간이었다. 온정각에서 미니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굽이굽이 금강산 중턱, 약600고지까지 힘겹게 올라간다. 양 옆에 곧게 뻗은 금강송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무리를 지어 서있는 모습은 여기가 금강산이구나를 실감나게 했다. 등산화를 단단히 조여 매고 등산은 시작됐으나 관광객의 연령분포가 제각각 이어서 그런지 철 계단 앞에서는 어김없이 정체 현상이 일어난다. 정체구간에 주위 풍경을 휙 둘러보니 수없이 많은 봉우리가 서있는 만물상은 전형적인 금강산의 모습이지만 아쉽게도 곳곳에 새겨져 있는 김일성 부자의 찬양문구가 옥에 티라면 티라 할 것이다.

 갓파른 오르막과 철 계단을 번갈아 오르니 938미터의 천선대 정상을 밟을 수 있었다. 정상을 그리 넓은 편이 아니어서 잠시 머물고 자리를 비켜주었지만 잠시 내려다본 금강의 모습은 역시 명산이란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거의 모든 봉우리가 평풍처럼 절벽으로 둘러 산맥을 이뤄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어서 등반한 곳은 망양대 북한의 동해안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멀리 해금강까지 볼 수 있는 망양대 정상은 매섭게 몰아치는 강풍이 오래 머물러 있지를 못하게 했다. 수많은 바위들이 위태롭게 올려져 있는 모습을 뒤로하고 아쉬움과 함께 하산을 재촉했다. 중간 중간에 북한 안내원 남녀 한조를 만날 수 있었고 어떤 곳에서는 북한산 잣을 10달러에 판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춥고 바람이 강한 산 길목을 안내하는 특수성 때문인 지, 아니면 영양결핍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여성 안내원들은 화장이 잘 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에 내려온 시간은 1시30분경 북한산 막걸리로 하산주를 대신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북한 남성안내원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다가가 아저씨 무슨 담배를 피우십니까? 물으니 퉁명스럽게 왜 그러냐고 답한다. 담배한대 얻어 피우고 싶다하니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다 못한 여성안내원이 한대 주시라요. 옆에서 거들자 그때서야 호주머니 속에서 담배 한가피를 꺼내 준다. 담배이름은 good fortune, 양담배 같았다. 셔틀버스를 타고 온정각에 도착하여 뷔페로 점심식사와 함께 간단한 쇼핑으로 금강산 관광은 막을 내렸다. 이제 장전항에 출국심사를 마치면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출국 심사는 입국심사와는 다르게 벌금을 마구 부과하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관광증이 물로 약간 훼손됐다하여 벌금 10달러를, 휴대폰을 소지했다하여 벌금 20달러를 부과하는 등 달러 사냥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돌아오는 길 또한 북한의 모습은 불쌍하다는 연민의 정을 또 한번 느끼게 했다. 찬 개울물에 빨래하는 모습, 어린아이를 안고 밖에서 처량하게 앉아있는 아줌마, 보따리 짐을 등에 메고 다니는 북한 주민들은 충분히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고 남았다. 비록 하루 동안의 짧디 짧은 북한 여행이었지만 45년간의 환상과 상상을 실제와 비교해 잘 정리, 머릿속 한 구석에 고이 간직할 수 있는 긴 시간이었다. 특히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실제로 내 눈으로 확인하고 느껴봤다는 것은 너무도 소중한 경험이자 내 인생의 귀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된 멋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