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0] 일출 - 빌딩숲속으로 새 생명을 안고 떠오르는 식장산 일출
식장산 기슭에서 붉은 햇살이 치솟아 올라 어둠에 가려진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어둠 컴컴한 둔산 도심의 빌딩사이로 세상을 서서히 밝혀 주는 장엄한 일출은 생명의 힘을 지닌 듯싶다.
마치 52년 전, 세상을 널리 밝히라며 환(煥)이라는 옷을 입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내 모습이 식장산 일출에 뒤섞여 하나의 몸체로 탄생 되는 것 같아 뭉클한 감정이 가슴에 묻어난다
[10:00] 아침 - 빌딩 유리벽에 내려앉아 자양분을 공급하는 둔산의 아침
어느덧 해는 중천에 올라 빼꼭히 서있는 빌딩 벽을 때리면서 사람들의 활동을 재촉한다. 늦가을 쌀쌀함이 피부에 스며들지만 두꺼운 유리벽사이로 파고드는 굵은 빛줄기는 아직 덜 익은 풋과일에 온기를 불어 넣는 듯 보인다.
돌이켜 보면 코 흘리게 어린 시절 홍역에 걸려 불덩인 상태로 어머니 등에 업힌 채 체온을 느끼던 시절부터 부모의 그늘아래 도움만 받아왔던 학창 시절까지 26년간의 세월은 따스한 아침햇살을 받으며 포근함을 느끼는 지금 이순간과 너무나 흡사해 보인다.
[14:00] 한낮 - 젊음의 열정으로 태양을 불태우는 도심의 한낮
시간은 흘러 햇살이 강해지는 한 낮으로 접어든다. 모든 것을 녹일 만큼 강렬한 태양이 부드러운 뭉게구름 속에 가려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늦가을, 덮지도 춥지도 않아 하루 중 가장 활동하기 좋은 한낮 도시풍경이다.
가을에 내려 쬐는 한낮 태양이 모든 곡식을 무르익게 하듯, 변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에 내 인생도 점점 무르 익어갔다.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150만의 공복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이후, 두 아이의 아비로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역할로 자리바꿈한 내 모습이 바로 이 시기이다.
잠시 바른 길을 벗어나 방황하는 아들을 제자리로 돌이키려 애쓰면서 부모의 심정을 이해해가는 또 다른 26년의 세월은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인생의 황금기이자 나 자신을 불태운 열정의 시기였다.
[17:40] 일몰 - 붉게 물드는 빌딩에 씁쓸한 마음이 스며드는 석양 노을
어느덧 해는 기울어 석양에 걸려있다. 용광로 같은 햇살은 서서히 그 열기를 잃어 약간의 온기만 남은 저녁노을은 하나 둘 늘어난 새치가 어느 순간 새하얗게 변해버린 현재의 내 모습과 닮은꼴로 허무한 마음이 든다.
지나온 52년을 쉼 없이 달려왔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평범한 공직생활, 아무 탈 없이 커준 아이들과 가족이 전부인 내 인생에 얼마만큼의 점수를 부여할 것인가? 이제 인생 1막이 끝나고 2막으로 막 들어서려고 한다.
나를 힘들게 했던 무거운 짐은 과감히 내려놓고 남은 2막은 새롭게 짐을 꾸리라는 메시지로 인식하고 도심 하늘에 매달려 있는 석양을 바라본다.
[20:00]
어둠이 내리고 하나 둘 레온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대낮 같이 밝지는 않지만 어둠을 밝히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식장에 떠오르는 일출에서부터 아침과 한낮을 거쳐 일몰까지 먼 길을 달려 왔지만 아직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인간도 이와 다르지 않다. 60여 년 간 경제활동을 이어가다 은퇴를 하지만 남은여생을 위해 또다시 불을 밝혀야 한다. 다가오는 미래가 희미한 촛불과 같은 존재가 될지 아니면 밝고 현란한 레온과 같은 존재가 될지는 내 스스로 지금부터 어떻게 준비해 갈 것인지에 달려 있다.
[24:00] 심야 - 모든 것을 정리한 듯 고요함만이 흐르는 도시의 밤
이제 도시를 밝혀 주었던 레온도 하나 둘 꺼져 버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세계로 빠져 든다. 도시를 밝혀 주던 태양과 레온들이 그 힘이 다해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이다.
생명이 붙어 있는 모든 만물 또한 언젠가는 암 흙의 세계로 돌아간다. 다만, 마지막 불이 커지기 전, 환(煥)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내 인생을 잠시 되돌아보고 엷은 미소를 머금으면서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볼 뿐이다.
'이런 저런 세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내린 구룡대 골프장에서 2011년 마무리 라운딩 (1) | 2011.12.27 |
---|---|
전신마취 후, 비(鼻) 용종 수술 (1) | 2011.12.17 |
10월의 마지막 주말 대전에 올 마지막 프로축구 및 마라톤 대회 열려 (0) | 2011.11.03 |
예약않고 가도 100%부킹되는 익산 쌍떼일 퍼블릭 (0) | 2011.10.25 |
전국체전 92년 만에 첫 호수공원 개막식 글쎄? (0) | 2011.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