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에서 날라 온 승전보에 밤늦게 까지 친구들과 축배와 함께 이야기기 꽃을 피우다 아침 일찍, 외도 행 유람선에 올랐다. 다소 거친 파도에 잘 하지 않는 멀미까지 겹쳐 속이 뒤집히는 상황에서도 외도의 역사에 대한 선장의 설명에 집중했다.
▲요약해 보면, “1969년 이창호 최호숙 부부가 외도에 낚시를 왔다가 기상여건이 안 좋아 민박을 하는 과정에서 동백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당시 돈 8백만원을 투자 섬 전체를 구입, 감귤나무 식재 및 돼지농장 등의 실패를 거쳐 30여년간 지금의 식물원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과연 얼마나 잘 조성되었기에 외도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까? 궁금증을 안고 섬에 상륙했다. 선착장에서 해발 84m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책로에 각종 식물과 나무를 집안의 정원처럼 잘 조경해 놓고 남해의 다도해를 호수로 품은 것과 같은 인상을 받았다.
▲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원색의 야생화와 곱게 단장된 향나무, 이국의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하는 야자수, 그리고 유명 조각가들이 정성을 담은 조각 들, 이모든 것을 한 쌍의 부부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을 선장으로부터 들은 설립자 이창호라는 이름에서 찾았다.
▲설립자 이창호는 바둑계의 신동 이창호와 동명이인이다. 바둑이라는 것이 본래 한정된 공간에서 컴퓨터와 같은 계산에 의해 집을 지어가는 과정이다. 외도의 역사를 보면 이와 똑같음을 알 수 있다. 남해의 조그만 섬 외도에 각종 식물들을 하나하나 포석해 놓고 둘레를 채워 최상의 조건으로 만들어 놓은 모습이 바로 바둑판의 그것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30년이라는 세월을 오직 황무지인 외딴섬을 하나하나 채워가면서 결국 실낙원으로 만들어 냈다. 보동의 의지와 노력가지고는 결코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이다.
▲ 이 모든 것은 설립자 이창호 선생이 갖은 자연에 대한 애정과 정열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故 이창호 선생을 기리는 비석에 적힌 시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임께서는 가파른 외도에 땀을 쏟아 거름이 되게 하시었고, 애정을 심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게 하시었으며, 거칠은 숨결을 바람에 섞으시며 풀잎에도 꽃잎에도 기도하셨습니다.” 중략......
▲ 1시간 30분 정도, 외도를 돌아보면서 무엇보다도 생각나는 것은 설립자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집념의 결정체가 지금의 외도가 아닌가 싶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가족이 함께한 외도여행, 외도의 나이만큼이나 우리 가람회도 졸업 후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외도에 아름답게 자란 울창한 숲과 꽃처럼 친구들의 가족 또한, 사랑스럽고 듬직한 2세들이 자라고 있다. 외도가 한 쌍의 부부가 정성을 들여 아름다운 낙원으로 태어났듯이 우리들 친구의 가정과 2세가 사회에 나와서 빛을 발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0년 6월 13일
가람회 친구들과 함께한 외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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