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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 달콩 오씨네 가족

심장병을 극복하고 A+로 자란 공주의 14년간 기록

1997. 2. 21일 때어나자 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1달을 넘게 사경을 해매다 정밀검사를 거쳐 선천성 심장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장장 10개월을 통원치료 후 완쾌되어 지금은 건강하게 자라고 학교생활도 A+인 우리 승미, 자라온 14년간의 세월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Ⅰ. 세상을 본 후 돌까지('97)는 병마와의 사투 기간으로 호된 신고식을 거친 시기이다.
      한참동안은 병명도 모른 채 거친 호흡만 쉬는 승미를 속절없이 바라만 봐야하는 고통도
      겪어야 했고 심장병이라 진단을 받고서는 심장병 관련 책 2권을 구입, 밤샘을하면서
      정보를 얻으려 노력했던 기억밖에 없던 시기였다.


 ▼'97년은 우리 공주에게 미안스러운 것은 동생을 갖고 싶어하는 오빠 때문에 늦둥이로 세상에 태어나  온갖 검사는 물론, 사시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동생이 있어 좋아하는  오빠 때문에 행복해 하는 모습이 아름답워 보인 한해였다.


'98년은 성모병원 심장전문의가 2시간 가량 검진에 검진을 거듭한 끝에 "자연 치유가 돼서 이제는 건강하다."는 말을 듣고 날아갈 듯이 기뻐하며 "우리 공주를 아주 귀하게 잘 키우겠다 ." 다짐했던 그해로서,  건강한 모습으로 돌사진까지 찍은 우리 승미가 대견하고 고맙기만 하다. 

 Ⅱ. 돌을 지나 5세까지('98~'00)는 놀이방 터줏대감으로서 대장노릇을 했던 시기였다.

       큰 이모가 운영하는 놀이방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다니면서 자연스레 텃세를 부리고
       대장노릇도 하는 바람에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등 적극적인 성격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던 시기였다.

▼한참 기어다닐 시기에는 온 집을 헤집고 다니며 사고를 치기 때문에 뒤를 졸졸 따라다녀야한다.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이니어서  가끔 양발을 이용해 족쇠를 만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가둬놓는 방법을 쓰곤했는데 지금 보니 답답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불만은 없는 것 같다. 




'99년, 이모가 운영하는 놀이방에서 대장 노릇을 오래한 탓에 아이들에게 줄 간식을 모두다 쌓아놓고 생일상을 받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만이 있어 보인다.  과자말고 승미가 좋아하는 피자나 치킨이 없어 그런가?



▼놀이방 생활을 오래하다보니 안 가본 곳이 없다. 국립묘지로 공원이나 들판으로 시간만 되면 밖으로 맛있는 도시락도 까 먹고 과일도 잘라먹는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아마 지금은 다 있어버려 여기가 어디인지 조차 모를테지만 말이다.


▼ 새천년('00년), 아마도 이 시기가 가장 여행을 많이 다녔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의 아들, 그리고 한참 세상구경을 하고 싶은 딸의 성화는 어디론가는 떠나야만 했다. 산과 들, 그리고 해수욕장 어디든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던 시기였다.

 
Ⅲ.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 3학년까지('01~'05) 5년간은  스펙을 쌓는 시기였다.  
      교내 백일장이나 각종 경연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해 상을 받아 놓고 
      학교 생활에서도 아이들을 앞에서 리드하는 리더로서 자질을 키우는 시기였다.


'01년 유치원 예꼴 졸업에 즈음하여 그동안 갈고 닦은 작품을 대도로변 담장에 걸어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랑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귀여워 보이는가?


'02년 안면도 꽃 박람회에서 할머니의 손과 발이된 훈련대장 우리 공주, 집에서도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발짝을 크게"뛰라며 화장실까지 안내하고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의 바지를 내려주는 효심이 가득한 손녀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진 속으로만 볼 수 있을 뿐 그 어디에서도 같이 할 수 없는 할머니, 그 자리가 더없이 커 보인다.  

'03년초등학교 입학식을 씩씩하게 마치고 기나긴 학교생활에 발을 들여놓았다. 학교에 가기 싫어 부모의 애를 태우는 아이들도 있는데 우리 공주는 놀이방 때부터 길들여진 대장 기질 때문인 지 전혀 그런 일은 없고 작품 발표회에 자진해 참석하는 열의도 대단했다.

▼'04년도에는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을 기념해서 제주도 여행을 떠났던 해로 우리 승미로서는 처음 비행기를 타본 의미있는 해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 노랗게 올라온 유채꽃이 애교만점인 승미와 우리가족을 따스하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05년 3월에는 우리승미가 가장 좋아하는 큰 이모와 이별한 해이다. 유아시절 대부분을 큰 이모와 함께 놀이방에서 지냈기에 그 슬픔도 컷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유아시절 추억의 대부분을 이모와 함께 했기에 아마도 공주의 머리에는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Ⅳ. 초등학교4학년에서 6학년('06~'08)은 줄곧 회장 선거에 출마를 했지만
      아쉽게 낙선, 부회장으로만 학급활동을 했다. 그러나 이때 부터 해외에
      눈을 떠, 매년 동남아를 다녀오면서 견문을 넓혀갔던 시기이기도 하다.

'06년 3월 베트남 하농베이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 나가본 해외여행이기에 마음이 들떠 여행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낸 공주였다.

'07년 7월에는 설악산 울산바위도 거뜬이 올랐다. 1년 전 보다는 키도 크고 체력도 강해져 제법 여성티가 난다. 울산바위의 그 가파른 철제 계단도 가장 먼저 앞서가는 여유와 대조영 세트장에서는 여왕의 포즈까지 서서히 어린이 티를 벗어나는 듯 싶다.

'08년 5월 이번에는 중국 상해와 황산을 다녀왔다. 근대사의 상징 상해 임시정부와 최고층 빌딩이 즐비한 현대 중국의 심장 상해시내, 그리고 자연환경의 진수 황산까지 말로만 듣던 중국을 들러보고 중국을 새롭게 생각했을 것이다.

 Ⅴ. 교복이 어울리는 중학생('09~'10) 떄에는 A+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대전에서 학군이 가장 좋다는 둔산, 중학교에 입학하고 줄곧 상위 랭크에
      머물어 지금까지 한번도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시기다.

'09년 6월 학교 수련회 친교의 밤이 아닌가 싶다. 장기자랑을 준비하느라 한동안 노래방을 전세낸 승미, 후에 들어보니 고음에서 약간의 실수가 있었단다. 그래도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10년 올해초 오빠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 축하를 해주고 최근에는 설경구의 해결사 시사회에 영화도 같이 보는 등 우리집의 없어서는 안될 보배로 자랐다.

 성모병원 분만실로 들어가는 집사람에게 이번엔 꼭 이쁜 딸을 낳아달라 부탁했는데
 나에겐 과분할 정도의 이쁜 공주가 품에 안겨졌고 기대한 만큼 잘 자라줬다.
 앞으로 지금해왔던 것과 같이 잘 해 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기록은 쭉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