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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방네 여행 후기

하농베이 앙코르와트 여행기


 

하농베이, 앙코르와트를 가다

 초등학교 시절, 그 당시에 동네 구경하기 힘든 텔레비전과 전축등을 월남전에 참전했던 동네 청년들이 가지고 나오는 것을 보고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로 나의 기억속에 남아 있던 곳이 월남이었다. 그 후 40년이 지나고 나서야 어렸을 적 소박한 소망을 풀 기회가 찾아왔다. 시청 팝스모임의 가족들과 함께 베트남 하농베이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3박5일의 일정으로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우리 가족은 승미와 나, 집사람 3명이 참가 하였으나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역시 승미이고 가기 전부터 마음이 들떠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인다. 전용버스로 5시30분에 대전을 출발하여 10시 35분에 하노이행 베트남항공에 탑승 4시간 10분만에 현지시간 2시경 하노이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처음 밟아보는 베트남의 이미지는 공항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제복을 입고 어깨에 계급장을 붙인 공안원들이 입국심사를 하는 모습은 여기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이요 남여가 대부분 작그만하고 마른 체형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다는 것이요 공항 밖의 야자수 나무등 열대 식물등이 뻬곡히 심어져 있는 것은 이곳이 상하의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베트남항공에서 준 장난감 꼭 잡고..>  



유난히도 한국 자동차자가 많은 나라답게 현대 45인승 버스를 타고 80여키로미터가 떨어진 하농베이로 이동하면서 이 나라의 풍경을 하나하나 담을 수 있었다. 2차선으로 된 주 간선도로는 오토바이와 자전거 버스등 차량들이 뒤 엉켜 가기 때문에 규정 속도도 40~50km로 정해놓고 있었으나 위험성 때문에 속도도 낼 수가 없었다. 실제로 짧은 거리를 이동하면서 사고현장을 3번이나 목격할 수 있었다.

 하농베이로 가는 길은 드넓은 평야지대를 가로질러 가기 때문에 베트남의 농촌 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물이 많고 온도가 높은 지역적 특성 때문에 들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를 심는 광경에 눈에 띄었다. 노동력 또한 풍부하여 직접 손으로 모를 심고 이양기나 기계에 의한 농사일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 70년대 농촌을 연상하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단지 틀리는 것이 있다면 물소를 이용한다는 점과 전쟁의 영향 때문에 여성들이 주로 농사를 짓는 다는 점이다.


 < 드넓은 베트남 평야를 배경으로 승미의 멋진 미소를 뽐내며... 휴게소 앞에서>

  
특이한 점은 논 한가운데에 묘들이 산재해 있었다. 왜 물구덩이 속에 묘를 만들어 놓았을까? 아마도 산이 없는 평야 지대이기 때문에 논 중앙에 묘를 만들었을 것이다. 길따라 길게 형성된 주택들의 형태는 토지 대부분이 국가땅인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직사각형 형태의 폭이 좁고 길이가 긴 2~4층 높이의 시멘트집으로 지어져 있으나 도색이 양 옆에는 되어있지 않아 무겁고 어둡게 보였다.
 우리 일행을 실은 버스는 크락션을 울려대며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밀치고 하농베이의 중간기착점인 559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에 들어서자마자 이상한 향 냄새가 나면서 역겹게 느껴진 것은 쌀국수에 넣은 향료 때문이었다는 것을 국수를 먹은 다음에 알았다
               

  < 짙은 향내의 쌀국수를 파는 559휴게소에서 >              < 휴게소 앞 좁은 2차도로 옆 에서 >

 


간단한 식사후 계속되는 오토바이와의 경주는 석탄 채광지역을 지나면서 거리에 연탄가루를 흣날리게 하고 마스크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의 공해를 유발시켰다. 상하의 나라로 난방이 필요 없음에도 연탄을 채광하는 것은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이란다. 저녁 6시경 하노이 출발 4시간 여만에 하농베이에 도착 해변가의 아담한 호텔에 도착 짐을 풀고 생선구이, 양배추, 고기구이, 어묵등 한국사람에게 입맛을 맞춘 퓨전음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베트남 여인들이 팔찌, 과일등을 가지고 1달러를 외치며 호객행위를 집요하게 한다.

 베트남 소주 Nep-Moi로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발맛사지 샾으로 자리를 옮겼다. 맛사지 샾에는 18~22세 사이의 남녀 맛사지사들이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음향의 조화를 이뤄가면서 맛사지를 시작하였다. 1시간 가량의 발맛사지는 발 뿐만아니라 어깨, 등, 팔등을 시원스럽게 풀어주고 발바닥 장단지등을 엄청난 아귀힘으로 압력을 가해 아프기 까지 하였다.


           

                         


1시간 넘는 비행과 또 4시간이 넘는 버스 이동이 피곤을 불러 일찍 잠을 청한 탓일까 새벽 2시에 잠은 깨고 창문을 열어 바닷가의 신선한 공기로 베트남 첫 날을 맞았다. 베트남은 2월이 계절상 겨울에 해당하나 기온은 17~20도 사이의 우리나라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호텔에서 내려다본 하농베이의 멋진 풍경과 신선한 공기를 베란다에 앉아 마음껏 들여 마시며 경건한 명상의 시간을 1시간가량 갖고 멋진 하농베이 비치의 풍경을 카메라에 듬뿍 담았다.


                                           

 


 아침식사를 뷔페식으로 마치고 3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섬 하농베이 투어에 들어 가기위해 선착장에 도착하니 2층으로 된 목조 선박들이 수없이 많이 정박해있었다. 가는 안개비가 내리는 잔잔한 바다를 가르며 하농베이 투어가 시작되자 과일파는 소형 선박이 옆에 붙으면서 집요한 상행위가 한참동안 이어졌다.

 무인도로 이루어진 수많은 섬들이 운무로 옷을 살포시 입고 아름다음을 한껏 뽐내며 서있고 그 사이를 유람선이 미끄러져가 도착한 곳은 석회동굴이었다. 우리나라 제주의 석회 동굴보다 규모면에서는 적어보였고 인위적으로 분수등이 설치되어 자연미가 떨어져 보였다.

 잔잔한 바다 한가운데에 떠있는 수상가옥에는 각종 어류들을 관광객에게 활어로 팔고 있었고 우리나라 제주에서 kg당 20~30만원을 호가하는 다금바리를 10kg에 300불 약 30만원에 구입하여 선상에서 베트남 소주와 함께 회파티를 벌였다. 처음 먹어보는 다금바리회, 역시 다른 회와는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수천개의 섬을 한눈에 관망할 수 있는 Tip-top 섬에 도착 470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올랐으나 운무로 뒤덮혀 절경을 뚜렷하게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선상식으로 점심을 함께하며 하농 투어는 마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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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날 오후 일정은 하노이로 돌아가 한식당에 들러 저녁식사를 하고 수상인형극을 보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하노이 시내에 들어서자 기금까지 보지 못했던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거리를 매우고 무질서속에 질서를 이루고 있었다. 특이할 만한 것은 오토바이에게도 주차료를 받고 있었다.   저녁식사 후 수상인형극장을 찾았다. 세계 제일의 수상인형극 기술을 자라하는 베트남 수상인형극은 한편에 악대와 노래를 중앙 연못에 커튼이 쳐있었다.

     세계1위라는 명성답게 크고 작은 각종인형들이 다이나믹하게 움직이며 베트남 문화를 연출하는 모습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이다. 커든속에서 사람, 동물인형들이 서서히 밖으로 나와 서로 쫒고 쫒으며 잡아먹히는 광경들이 실제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이 연출하였다. 1시간정도의 연극이 끝나자 물속 커튼 속에서 건장한 남녀 7~8명이 가슴까지 찬 물을 헤지며 관람객에게 인사를 나왔다. 그들이 커튼속에서 대나무로 조정을 한 것이다. 그 많은 인형들을 엉키지 않고 질서있게 조정하는 모습은 베트남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술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저녁 9시경 수상인형극은 끝났고 하노이 시내 외곽에 위치한 쉐라톤 호텔에 자리를 옮겨 여장을 풀었다. 하노이 특급호텔 답게 규모와 시설이 주변 호수와 함께 아주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호텔이었다.    베트남 도착 3일째 새벽, 아직도 밖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화창하게 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하노이거리와 사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새벽5시쯤 카메라를 들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아침 일찍인데도 쌀국수를 파는 가게에는 손님이 한두명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고 거리에는 오토바이가 서서히 늘어나고 있었다.

 

  도시민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하여 골목길로 무작정 들어가 보았다. 잘사는 집, 못사는 집 가릴 것 없이 공통적인 것은 조그만 정원들을 가지고 있고 대체로 가구등은 아주 잘 꾸며놓고 사는 것 같았다. 특이한 것은 좁은 골목길의 계단은 중앙에 오토바이가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 교통로 활용하고 있었다.  아침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들어와 부족한 운동, 푸샾을 몇 개 하다가 생각지도 않는 일이 터졌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스탠드 커버등이 깨진 것이다. 결국 터무니없이 비싸게 100달라를 카드로 변상하고 이 나라의 영웅 호지명의 생가로 이동하였다.

  베트남 공산당을 창시한 독재주의자로 알고 있는 호치민은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가장 좋아한다는 말이 대변하듯이 백성을 우선 생각하는 마음이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가족들의 부패를 염려하여 결혼을 하지 않은 그는 우리나라 청와대와 같은 큰 궁전을 사양하고 조그만 집에서 평소 집무를 보고 외국사절 등 접대 등에만 사용했다하니 그의 검소함을 잘 알 수 있다. 주석궁 경내에 있는 수 백년된 보리수나무 등이 운치를 더한다.   특히 호치민이 생전에 정사를 보는 집무실을 겸한 생활터전은 1층에 서재, 2층은 방2개로 식당과 침실겸 서재등 아주 조그만 집으로 되어 있으며 화장실은 직원들과 함께 공동화장실을 했다한다.  단지 조그마한 집이지만 앞에있는 호수가하며 아름드리 나무등 주위환경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였다. 호치민은 이런 아름답고 조그만 집에서 독서와 정사를 보았고 호수가에 나가 고기밥을 즐겨 주면서 권력의 1인자답지 않게 생활했다한다.

 
 베트남은 옛날만해도 한자를 사용하는 유교문화권이었으나 프랑스 식민지를 받으면서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알파벳으로 된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공자를 모셔놓은 사당을 들어가 보니 이들의 뿌리를 알 수 있었다.  사당의 중간에 거북이 등위에 올려진 과거에 장원급제한 사람들의 한자 이름을 새겨놓은 비석들이 80여개가 운집해 있었고, 거북이 머리를 쓰다듬고 자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전설 때문에 우리도 한번 해보고서  공자, 맹자 등을 모셔놓은 사당으로 들어가 보니 엄숙함과 함께 예와 덕이 넘쳐흐르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공자사당을 관광하고 남아있는 베트남일정은 점심식사를 하고 고무제품인 라텍스 베게 및 메트레스 가게와 보석상에서 쇼핑을 한 후 캄보디아로 이동하는 것이다. 일정에 따라, 라텍스 상가에 들러 630달러를 주고 베게와 메트레스를 큰맘 먹고 구입한 후 베트남 항공편으로 캄보디아로 이동하였다.

 


 
하노이에서 베트남의 앙크로와트 공항까지 약 1시간 40여분간 날아와 어둠이 드리우는 저녁시간 (오후 6시40분) 캄보디아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둠속에 묻힌 암흑의 도시같이 불빛하나 반짝이는 곳이 없었다. 공항은 또 어떠한가? 국제공항이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단층 건물의 공항이 덜렁 서있는 것이었다.
  날씨는 섭씨 17도 정도의 하노이 날씨에 비해 갑자기 섭씨 32도의 날씨로 바뀌면서 몸이 잘 적응되지 않아 걸쳐 입은 옷을 하나 둘 훌훌 벗어버렸다. 캄보디아도 베트남과 같이 우리나라 버스가 많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주로 25인승 아시아 버스와 현대버스등이 주 관광버스로 이용되고 있었다. 이유는 앙코르와트 관광을 하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앙코르와트 문을 통과 할 수 있는 이 버스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25인승 아시아 버스를 타고 캄보디아 전통공연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위해 공연장으로 이동하면서 또한번 이 나라가 얼마나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인가를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수도 다음의 큰 도시임에도 우리나라 군 단위 정도의 규모와 움막집은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었다.
    공연장안에도 에어콘은 가동되지만 시원하지도 않고 밖에도 후덥지근하여 빨리 호텔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호텔은 4층 높이로 아담한 싸이즈나 이곳에서는 가장 좋은 호텔이란다.   덥기 전에 앙코르와트 유적지를 둘러 보기위해서 아침 7시30분에 호텔을 출발하여 본격적인 세계 7대 불가사이 중에 하나인 앙코르와트기행에 돌입했다. 우리 일행이 제일먼저 도착한곳은 앙코르왕조의 마지막 도읍지인 앙코르 톰이다. 이곳은 말 그대로 큰 성곽도시로 왕궁은 물론, 종교 건물과 관청 건물도 있었던 앙코르 제국의 중심지였다. 앙코르 톰은 동일한 시기 유럽의 어떠한 도시보다도 큰 도시였고, 인구도 많았는데 거의 10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앙코르 톰에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돌을 어떻게 쌓았나 하는 건축술과 각 돌마다 새겨놓은 정교한 조각 즉 부조들은 현대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예술중의 예술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유럽의 로마 바티칸 궁전의 벽화 등 세계 어느 유적보다도 웅장하고 뛰어나다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 무거운 돌을 쌓기도 힘들었을 텐데 쌓아 논 돌에 표정까지 담을 정도의 섬세한 조각 하나하나가 건축물 전체를 뒤덮은 모습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앙코르와트는 유적지는 지금까지 정확한 정의와 진실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원이다. 무덤이다. 왕궁이다. 등 많은 설들이 무성하지만 아무도 그 진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바로 불가사이가 아닌가 한다.  단지 1000년전 베트남, 말레지아, 태국등의 동남아 제국을 통일한 앙코르 제국이 하루아침에 어디론지 사라져 버려 현재의 유적으로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자연의 힘을 보여주는 타 프롬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 특히나 이 공사에 동원 되었던 노예와 징발된 국민의 피와 땀이 한낱 나무 뿌리에 의해 파괴되어 버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으로 가는 길을 이처럼 방치한 것은 자연이 어떻게 사원을 무너지게 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들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하여 일부러 복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앙코르와트, 이 건물을 만드는데 소요된 수많은 돌을 어떻게 운반하였는지, 건축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절로 감탄이 불가사의에 싸여 있는 건물이다 사원의 정 중앙에 세워진 중앙 탑은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을 상징하며 5개의 탑은 메루산의 5개의 큰 봉우리를 나타낸다. 성벽은 세상 끝을 둘러 싼 산맥을 뜻하며 둘러싼 호수는 우주의 바다를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앙코르와트가 지니는 건축적 의미는 3층 중앙 탑들이 있는 곳은 천상계, 2층은 인간계, 그리고 1층은 축생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건물의 정교함은 벽에 새겨진 조각뿐만 아니라 돌로 쌓아올린 지붕을 기와처럼 조각을 하고 돌로된 창살을 하나하나 조각을 하여 실제 문향처럼 꾸며놓았을 뿐만아니라 육중한 돌들을 그렇게 높게 쌓았음에도 전혀 빗물이 스며들지 않게 건축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일본의 기술진이 보수공사를 한 후 빗물이 새어들어 기둥이 내려앉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현대 기술보다 훨씬 앞서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3박5일의 짧은 일정으로 하농베이와 앙코르와트의 관광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불고기로 점심을 먹고 간단한 쇼핑과 함께 공항으로 간 시간은 오후 4시 베트남 항공으로 하노이로 다시 돌아왔다. 저녁8시부터 서울발 0시45분 비행기 탑승까지 지루한 시간을 조그마한 공항 안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공항안에는 한국 사람만 가득메워 간다. 밤 10시 대한항공, 11시30분경 아시아나항공, 12시 45분 베트남 항공등 1000여명이 한국으로 돌아 가기위해 그렇게 북적였던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가는 이렇게 외국을 나가보면 잘 알 수 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고 하더라도 외국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오랜만에 나온 이번 여행, 특히 우리 귀여운 딸 승미와 처음 외국에 나와 겨울철 상아의 나라에서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었다는데에 큰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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